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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유타한인회 창립을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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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17회 작성일 10-11-2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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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면 박사 (유타대학교 명예교수, 유타한인회 초대회장)


<1976년 7월26일 Utah Power Light Company 별관에서 역사적인 유타한인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총회에서 초대회장에 이정면교수(유타대학교) 선출되었고 위성만장로 및 난데이비스씨가 부회장으로 초대이사장에 김연교수가 선출되었다. 그로부터 40여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그간 역대 회장님들의 눈부신 노력과 교민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협조로 미국 내에서도 이름 난 건전한 한인회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한인회 출범과 오늘 그리고 내일의 한인회의 발전을 위해서 한인회의 창립을 다시 되돌아 보려한다.>


&#160;&#160; 필자가 1972년 7월에 유타대학에 부임한 후 수년 동안 유타 한인사회에서는 쉼 없이 한인회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오고가고 했었다.

&#160;&#160; 당시 유타 주에는 유타대학에 근무하고 계셨던 故 이태규 박사님을 지도교수로 한 [유타대학교 한국유학생회] 특히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한 유학생회가 있었다. 그래서 어떠한 행사가 있었을 때는 난데이비스씨와 박세호씨를 중심으로 한 국제결혼을 한 분들과 학생들이 상호 협조하므로 서 모든 행사를 그때그때 그 나름대로 치름으로서 타국생활에서 오는 고국에의 향수를 달래고 있었다.

&#160;&#160; 그러는 동안에 유타 주 자체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유타한인회의 조직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리가 점차 높아져가고 있었으며 유타한인사회의 유지들은 적극적으로 한인회 조직을 밀고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조직의 필요성을 다 같이 느끼고 있으나 누가 시간을 내서 실제로 앞에 나서 뛰며 이것을 관리 추진하여 끝을 맺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 당시 Salt Lake 지역에는 이곳에 일찍이 오신 이태규 박사, 이진모씨, 김희영씨, 위성만 장로, 김연교수 그리고 김성완 교수 등이 있었다. 이분들은 모두가 한인회 조직을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었다.

&#160;&#160; 특히 유지들 가운데서 그 당시 [Primarily Children Hospital]에서 재무부장을 지내고 있었던 위성만 장로는 기회 있어 만날 때마다 "이 박사님이 주동이 되어 한인회 조직에 착수하시면 한인사회에도 아무런 잡음이 없이 잘 진행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견해는 교민 여러분들의 의향이기도 합니다. 수고스럽지만 이 일을 맡아 추진해 주세요. 저희들이 옆에서 적극 협조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160;&#160; 그러나 필자는 분명히 위성만 장로 그리고 유지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 바 있었다. "나는 여러분들 같이 유타에 일찍이 온 고참도 아니고 또 대학에 몸을 담고 있으니 한인회 조직에 대해서는 어둡습니다. 따라서 위장로를 비롯한 여러분들이 하셔야 됩니다."라고 이야기했었다.

&#160;&#160; 하지만 여러분들로부터 여러 차례 권유를 받고 보니 무한정으로 사양한다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되 어 한인회의 회칙만 만들어 한인회 창립총회 단계까지만 밀어 올려놓기로 하고 일단 유타한인회 조직을 수락했었다.

&#160;&#160; 이 임무를 맡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필자는 첫째, 한인회 조직의 기본적 사항인 회칙작성을 위해서 준비위원인 소위 한인회 조직의 창립위원으로서 김연교수, 위성만 장로, 김성완 교수 등을 위촉하여 회칙작성에 모든 정력을 다 기울였다.

&#160;&#160; 무게 있고 짜임새 있는 회칙을 만들기 위해서 수시로 이진모, 강대명, 김지남, 황현식 그리고 새로 오신 박동수씨 등 여러분의 의견을 수렴했었다. 그뿐 아니라 New York, Chicago, Los Angeles, San Francisco 등 타주의 각 한인회 회칙을 모아 유타한인회의 회칙에 반영시킴으로서 가장 신빙성 있는 회칙을 만드는데 갖은 힘을 다 했었다.

&#160;&#160; 이 회칙을 작성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Salt Lake City에서 모여 회칙을 여러 각도에서 검토 하였고 때로는 준비위원들과 장소를 바꿔가며 김연교수가 Logan에서 Salt Lake에 내려오는 시간을 덜기 위해서 위원들이 Logan으로 가서 밤늦도록 신중히 다지고 또 다지면서 회칙작성에 전력을 다 했었다. 회칙 작성을 마치고 늦은 밤길을 운전하여 다시 Salt Lake City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아가며 회칙 그 자체에 어떠한 하자가 없도록 최선을 다 했었다. 그 당시 위원들은 Provo는 가지 않았다. 최근에 와 서 BYU에도 작고하신 김한곤교수, 그리고 이호남교수, 김차봉교수 등이 계시나 그 당시에는 계시지 않았으므로 주로 Salt Lake City와 Logan을 중심으로 회칙을 다지고 마지막으로 Salt Lake City에서 마무리를 짓는 작업을 서둘렀다.

&#160;&#160; 한인회 회칙작성 작업을 추진하고 있었을 때 필자에게 교민 여러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전해왔었다. 한인회는 꼭 있어야 한다고 걱정하는 분도 있었고, 그 중에는 일종의 압력으로 간주되는 부분도 있었다. 즉 "이박사님, 왜 한인회를 만들려고 하십니까? 현재 보시다 시피 각 지방에서 한인회로 인해서 벌어지고 있는 교포간의 추잡한 싸움, 대립, 알력, 갈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조용한 유타사회에 괜히 한인회를 만들어 시끄럽게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특히 유타대학 내에는 한국유학생회가 있고 또 외곽단체의 성격을 띤 국제결혼을 한 분들과 서로 유대 관계를 가짐으로서 잘하고 있는데 무슨 한인회가 필요합니까? 이박사님, 한인회 조직에서 손을 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하고 한인회 조직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대표명하고 나온 것이었다.

&#160;&#160; 그러나 필자는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건설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필자는 한인회 조직에 대해서는 본인 나름대로의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인회 조직이란 임무를 맡기로 수락했던 것이다.

&#160;&#160; 유타 교민사회가 한인회로 인해서 반드시 싸운다는 보장도 없고 또 싸운다고 하더라도 한인회는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한 문제점이 야기되었을 때 적절히 해결하기 위해서 좋은 한인회 회칙작성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160;&#160; 한인회가 있으면 싸우게 된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필자도 부정하지 못한다. 설령 한인회가 생겼기 때문에 싸운다 하더라도 그 싸움을 계기로 대화를 통해서 서로 이해함으로서 보다 큰 발전과 전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160;&#160; 말썽 없는 한인회란 그 회를 운영하는 회장과 임원이 제자리에 있으면 된다고 본다. 양심적이고, 정직하고, 봉사정신이 강한 회장 그리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교민사회 이와 같은 여건만 갖추어 지면 한인회가 싸우기 위해서 있는 것 같은 인상은 없어지지 않을까 한다. 흔히들 한인회장이 한인사회를 앞에 내세우고 무엇인가 자기 존재를 과시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본다. 한인회장이란 소속 교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솔선수범 봉사하는 자리이다.

&#160;&#160; 자고로 말하기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특히 미국과 같이 시민중심의 민주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개인하나의 권리주장도 중요하지만 단체의 힘을 과시하는 조직의 힘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백인사회에 뛰어 들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힘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가. 새삼 느끼게 될 즈음에 한인회 발족이후 곧 한인사회를 비롯해 일본사회와 필리핀사회가 함께 발기인이 되어 유타 주에 처음으로 AAU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160;&#160; 그러는 동안에 시일은 흘러 회칙은 그 나름대로 다져가고 있었고 마침내 일본인 변호사 Jimy Mitsunaga씨를 만나 작성된 회칙의 검토와 기타 법적절차에 따른 제반 문제점 등을 검토하고 유타 주 정부에 의 등록을 서둘렀다.

&#160;&#160; 이와 같이하여 한인회 회칙작성 작업이 완결되어 1976년 7월26일 비로소 Utah Power Light Company에 근무하고 있었던 이진모씨의 알선으로 동회사의 별관에서 정식으로 역사적인 유타한인회 창립총회가 많은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개최되었다. 총회에서 초대회장에 필자가 선출되었고 위성만장로 및 난데이비스씨가 부회장으로 피임되었으며 초대이사장에 김연교수가 선출되었다.

&#160;&#160; 화기애애한 가운데 총회가 진행되어가는 가운데 당시 유타교민사회에서 가장 고령이시고 한인회 조직에 있어서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와주셨던 故 박동수씨는 치사(致辭)를 통해서 "…….이제 우리 유타에도 한인회 즉 [유타號]라는 배(舟)가 출범했습니다. 서로 화목 하는 가운데 유타교민사회를 발전시켜 나갑시다……." 한 말씀이 지금도 필자의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160;&#160; 참고로 한인회 회칙의 몇 줄을 들어보면 제1조는 韓人會의 명칭, 제2조는 韓人會의 소재지를 밝히고 제3조 는 본회의 목표에 대해서 적어져있다. 즉 [본회는 유타 주에 거주하는 교포상호간의 친목과 교민들의 미국 내에서의 적응 및 지위향상을 도모하고 韓人社會의 발전과 한국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보전하여 아울러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과 교육을 실시하고 나아가 조국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160;&#160; 유타한인회 창립이래. 40여 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인회에 직접 몸을 담고 참여함으로서 그 성장을 지켜보아 온 한 사람으로서 본회의 건전한 발전상을 볼 때처럼 마음이 흐뭇한 때가 없다. 또한 오늘날 교포사회의 중추적인 역할로서 발전한 노인회, 한글학교, 한미여성회, Utah코리안타임즈 등도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160;&#160; 그간 물론 다소의 파란곡절도 없지 않았으나 그럴 때마다 역대회장들 그리고 교민여러분들의 슬기롭고 지혜로운 대화 적극적인 협조와 이해에 의해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함으로서 큰 과오 없이 꾸준히 성장해 온 유타 한인회이다. 그러나 회고컨대 40여 년 동안 본회의 운영 중 제일 큰애로의 하나가 있었다면 매년 새로 뽑는 회장선출이었다고 하겠다. 이사회에서 적절한 인물이라고 뽑아 놓으면 회장(職)을 사양하고 만다.

&#160;&#160; 유타한인회는 초대회장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출되면 사양하고 서로 회장을 안 하려고 하는 전통이 오늘날 까지 내려오고 있다. 필자가 알기로는 '내가 회장하겠다!'고 나서 선출된 회장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분들이 일단 회장직을 수락하게 되면 전력을 다해서 교민사회발전에 갖은 힘을 다해온 역대 회장단이기도 하다.

&#160;&#160; 오늘날까지 회장선출은 이사회에서 하고 그 회장을 한인회 총회에서 인준을 받아 왔었다. 이사회에서 허심탄회 오로지 한인사회를 위해서 뛸 수 있는 사람을 회장으로 뽑아 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선 거에 속한 것이었다. 오늘날 유타한인회가 큰 과정없이 운영되어온 이유의 하나는 이 회장선거제에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160;&#160; 그렇다고 해서 이 간접선거제를 계속 그대로 밀고 나가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타 한인사회도 그간 40여년 이란 기나긴 세월을 겪어왔고 교민의 인구도 증가되었으며 또 새로운 젊은 세대도 많이 늘어났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호흡할 수 있는 꿈과 새로운 설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계층에 한인회 운영을 넘겨 줄 때가 왔다고 본다.

&#160;&#160; 종전의 회장 간접선거제에서 직접선거제로 바꿈으로서 40여 년간 겪어왔던 회장선출시의 고민도 해결되지 않을 까도 생각해 본다. 교포가 가장 많이 모이는 광복절 행사 때나 혹은 송년회 등을 이용하여 유타교민 스스로의 직접투표에 의해서 회장선거 직선제가 이뤄질 때가 오지 않았나 하고 유지들과도 뜻을 같이 해 본적도 있다.

&#160;&#160; 이러한 회장 직선제에 대해서 걱정하는 분도 없지 않다. 회장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에 의해서 불미스러운 처사도 파생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적절히 규제함으로서 그 문제점을 지양할 수 있다고 본다. 유타교민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서슴치 않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한 때라 생각한다.
&#160;&#160; 그 직선제 실시를 통해서 유타한인회 창립 40여년의 역사로 보아 직선 한인회장을 뽑아내는 한인회로 성장 했다고 본다. 유타한인회도 이제는 탈바꿈할 때가 왔다고 본다.

아무튼 유타한인회는 그동안 많은 난관을 극복함으로서 오늘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기까지 한인회 역대회장들의 헤아릴 수 없는 심로에 의한 한인회 운영과 교민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조 그리고 상항 총영사님을 비롯한 역대 총영사님들의 유다른 돌봄 등이 아름답게 결실되어 유타한인회 회칙이 명시한대로 [화목]이란 목표아래 명실 공히 오늘날 미주 한인사회에서 보기 드문 모범적 교민사회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백인주류사회에 뛰어드는 데에 최선을 다할 때가 왔다.

&#160;&#160; 우리는 새로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 중대한 시기에 유타한인회는 새로운 세대교체가 순조롭게 이뤄져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160;&#160; 바라건대 한인회와 교민여러분들과 서로 협조함으로서 한인회 운영의 묘(妙)를 얻어 과거의 내실강화의 중점을 외부와의 과감한 접촉을 도모함으로서 유타 한인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으로 2011년 새해를 맞는 친애하는 교민 여러분의 건강과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Korean Times of Ut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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